친구라고 하게 되면은 원래 사람의 지위나 신분을 생각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사귀고 있는 사람으로 나의 위치를 측정하는 본능이 있다.
결국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내가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진다
내가 매력적인 사람 그러니까 그런 선택의 폭이 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걸 가지고 있어야 될까요?
거기에는 일단 기준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 는 묘하게 친구라는 관계는 굉장히 순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다지 순수하지가 못해요.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올라갈수록 거기에 맞는 친구들이 내 주위에 구성되기를 원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벅찬 쪽으로 잡게 되면 갈등에 놓이는 거고요.
친구들을 나보다 약간 낮은 쪽으로 놓이게 되면 나는 갈등에 놓이지 않는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 마음속에 착하고 재미있는 사람만으로 만족이 안 된다는 거죠.
착하고 즐거워야 된다는 기본이 있는 거고요. 착하고 즐거운 거로 만족이 안 되는
내가 원하는 친구 모습이 하나 있을 때마다 원하는 친구의 모습에 해당되는
나를 갖춰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저절로 끌어들이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해요.
내 외모가 별로라고생각하고 외모에 필요성을 느끼는사람이라면
외모가 아름답고 훌륭한 친구랑 있으면 계속 열등감에 휩싸일 것 같지만. 그러나 내 외모가 열등하잖아요. 자꾸 이쁜 사람들의 친구를 갖고 싶어 해요.
그거로 인해서 심리적 보상을 받고 친구를 보면서 열등감을 느끼지만 바로 열등감 때문에 친구를 사귀게 되는 거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친구로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에 진짜 나중에 아름다워지잖아요.
우정이 끝나게 되는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보니까, 열등감과 의존감이 동시에 있게 되니까. 갈등이 있게 되고 우정이 힘들어지는 거죠.
그런 딜레마에 놓일 때는 어떻게 그런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도 꼭 해소해야만 될까 ?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거든요.
결국은 괴로움을 동반하는 우정이더라도 그걸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정이 나한테 주는 만족감이 더 높다는 거거든요.
현재로서는 우정이 나한테 필요한 거예요.
내가 어떤 친구들이 있는데,
나를 좀 무시하고 그래요.
그러나 나는 친구들이 아니면 다른 친구들을 사귀는 게 참 어려워요
그러면 나를 무시하는 친구를 만나고 괴롭지만 아직 나는 충분히 강해지지 못해서 이 우정이라도 있는 게 나은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하고 행복하고 성숙한 우정과
완벽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고 미성숙한 우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분은 친구가 나눠져 있죠.
힘들고 마음이 불편할 때는 내가 전혀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친구를 만나고요.
누구랑 같이 있어서 좀 상승하는 기분을 느껴야 될 때는 열등감은 느끼지만 나보다 좀 잘난 친구를 만나고요.
많은 분들이 목적에 따라 친구를 잘 쓰고 있어요.
말 그대로 어떤 친구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뭐 좋은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나의 그런 상태에 따라서 이용하면 되는 거잖아요.
이용한다. 그래서 그게 우정이 아닌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또 내 어떤 우정은 진짜 내가 힘들 때 우리가 얘기하는 순수한 우정에 가까운 우정도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이 가지는 우정의 정도와 레벨도 참 복잡하고 다른 거예요.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친구와의 우정의 이유가 친구의 우월함에 있는데, 내가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되면은 친구와는 더 이상 안 만나게 될 거예요.
나는 이 사람이랑 있으면은 내 열등감을 보상받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편해요.
그거를 모르고 있으면 그냥 만나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내가 얘네들을 만나는 목적이 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 라고 아는 순간
이 우정은 나한테 우정이 아닌 이용으로서 다가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정으로 포장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우정이라는 포장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런 형태의 우정은 우정으로서의 가치가 끝나는 거예요.
그렇다면 좋은 친구들을 가지기 위한 대전제는 뭘까요
일단은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고요. 두 번째는 손절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관계를 굳이 끊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어느 한 친구나 어느 한 사람한테 모든 거를 기대하지 않아요.
얘랑 있고 즐거우면 되는 사람도 있는 거고요. 어떤 사람이랑은 심각한 얘기를 잘 나눌 수 있으면 되는 거고요. 어떤 사람은 같이 운동하면 좋아요.
그런데 운동만 하면 좋은 거지 내가 힘들 때 꼭 위로를 해줄 필요는 없거든요.
한 사람한테 모든 거를 기대하지 않아요.
그러나 굉장히 진정한 우정을 꿈꾸는 분들은요,
그게 어느 한 사람이 수퍼맨처럼 모든 역할을 다 해주기를 바라요.
재밌게도 하고, 위로도 같이 하면서 운동도 같이말이죠
나는 이 친구랑 운동하고 싶다는데 이 친구가 운동을 너무 싫어해서 안한다면 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안 하지 실망해버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수록 좋은거죠
세상에 미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과 좋아 하는 것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싫다 좋다를 옳다 그르다로 포장하고 싶어 해요. 그러면 기대치가 높아지고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요.
내가 사람이 미울 때 그냥 싫어하는 거야. 라고 하면, 오히려 기대치가 낮아지고 깔끔해져요
내가 사람이 좋을 때 그냥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좋아서 사람이 좋은 거지 사람이 뭔가 올바라서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사실은 우리는 옳기 때문에 좋아하고 그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옳다고 포장하고 싶고요.
우리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그르다고 결정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냥 나랑 다른 거 나랑 싫어하는 일을 하더라도 저사람은 왜 저렇게 잘못된 행동을 하지라고 할 때 내 마음을 돌이켜야 돼요.
그냥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돼요. 포장하면 포장 성이 벗겨질 때 나는 또 실망하게 돼요.
현재 가치 있고 즐거우면은 그걸로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