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야.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 돼 이제 내 성격은 안 바뀌겠구나 말대로 사람은 정말 바뀔 수 없는 걸까요? 내 주변에 그렇게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손절만이 답인 걸까요? 이런 생각은 정말이지 너무 위험하면서도 섣부른 생각입니다. 왜일까요?
먼저 우리의 성격 언제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부분들은 상당 부분 태아 시절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태아 때 어떤 호르몬의 영향을 주로 받는가 바로 이 요인으로 인해서 성격은 상당 부분 타고나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나머지 부분들도 본격적인 청년기 이전에 대부분 결정된다는 거죠.
종합해 보면 성격은 인생 초반부에 대부분 결정 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합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 성격의 대부분이 형성된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이제 내 성격은 안 바뀌겠구나 이제 안 되는 일 포기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자포자기하시거나 결정 내리시는 분들 꽤 계실 겁니다.
하지만 성격이 인생 초반부에 결정 난다라고 하는 사실이 내가 살아가는 미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니 성격에 너무 과몰입하시는 건 절대 금지입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적인 것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은 자기 성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정도에서 딱 멈춰야 됩니다.
무슨 말이냐 성격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제한하고 포기해 버릴 수 있는 그런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서 너는 내향적이야 혹은 나 스스로도 나는 참 내향적이야라고 하면, 나에게 적성에 맞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그런 기업에 안 들어가려고 하는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 성격에 너무 지나치게 몰입을 하게 되면 결국은 맞는 성격 안 맞는 맞는 성격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의 대화 속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화라는 것이 참 재미있죠. 무엇에 대해서든 많이 대화하면 그것이 맞다고 믿는 경향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성격 검사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심리학과 학생들이 성격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발달심리학을 수강하는 심리학과 학생들은 이제 사람의 어린 시절 예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누군지 파악하려고 해요. 더 놀라운 건 광고심리학을 듣게 되면 이제 상대방이 어떤 광고를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자기랑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아주 정확한 검사를 만든다 하더라도 사람에 대해서 1%를 아는 거다 우리는 파악될 수 있는 측면보다 스스로 경험하면서 느끼고 알아가야 되는 것 훨씬 더 많다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격은 이미 상당 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성격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죠
그런데 나는 성격이 변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계십니다. 이런 분들 주위에 많이 계세요. 난 고등학교 때까지 되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 나이 드니까 성격이 변하더라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많죠 왜일까요? 나이가 서열을 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내가 주도권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주도권을 가지고 오히려 내 성격이 변했다라고 얘기하는 분들도요 이민 가시잖아요. 고대로 옛날 성격으로 돌아가십니다.
아무래도 전혀 새로운 환경 낯선 상황으로 가게 되니 내가 주도권을 잡기가 어려워지잖아요. 그러니까 기본적인 성격에 사회적 기술이 얹어지면서 우리는 성격이 변한 것처럼 보이거나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으시면서 역시 사람은 고쳐 쓸 수 없구나라고
또 이런 생각은 너무 위험하면서도 섣부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성격으로 모든 게 정해지지 않거든요. 성격이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에 따라서 정도에 대해서는 조금씩 이견이 있지만 많이 잡아야 10%다 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게 봐야 될 것이 사람의 성격 아닌 성품입니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무언가가 겸비되었을 때를 가리켜 우리는 인격이나 성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인격과 성품은 같은 성격으로부터 출발을 해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미래를 가게 만드는 그런 경향이 있죠. 사실 성품이라고 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성격이라는 말과 달리 전문적인 학술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워낙 다양한 성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몇 가지 차원에서 조합으로 인해 훨씬 단순하고도 소수의 타입으로, 즉 유형으로 망라가 되거든요. 하지만 사람의 성품을 얘기할 땐 사람만의 걸어온 길을 이해해야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성품은 자기의 성격의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만의 삶의 방식 그걸 성숙한 성품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성격은 잘 안 변해도 성품과 인격은 어떻게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능력의 차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런 지능지수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IQ는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지적인 능력이나 사고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즉 성장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이 싫다고 하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격에 대한 죄로만 돌린다 그러면 앞으로 사람이랑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 내 인생에서 빼야겠죠. 제가 성격 검사나 MBTi와 같은 성향 검사에 너무 과몰입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이런 검사 결과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결국 평생 나랑은 맞을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정해지고,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상황 가능성이 현저하게 작아진다는 걸 뜻합니다. 나한테 도움 되는 일이 절대 아니겠죠. 누군가의 성격이 아니라 사람이 싫다는 걸 인정하셔야 돼요.
자신이든 타인이든 성격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성격은 왜 이 모양이지 이런 고민은 누구나 다 아는 거고요.
이럴 때 내 성격의 죄를 너무 많이 물으시면 안 됩니다. 대신 내 성품의 죄를 물으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러지 라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내가 왜 그때 그렇게 행동을 한 거지. 라고 하면서 육하원칙을 집어넣으시고 계속해서 추리의 폭을 넓혀가는 게 더 나은 거라는 거죠.
내가 왜 그러지라고 하는 건 실제로 자기가 무엇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정확히 무엇에 대해서 속상해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뱉는 넉두리 같은 얘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때 시점에 행동을 사람에게 했지라고 훨씬 더 육하원칙을 정확히 집어넣고 생각을 하시면 내가 이 생각을 기억합니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없는 건 인정해야 하죠.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인정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은 변화가 만들어질 거야라고 하는 준엄한 법칙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